군대에서의 기억

2005년에 있었던 총기난사 사건때 욱해서 적었던 글입니다.
(한때 싸이월드에 '페이퍼'란 서비스가 있었던 무렵 입니다.)

오늘 예비군 훈련을 다녀와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옛 수첩을 들춰 봅니다.
이 글의 내용이 본래 목적은 아니고 정말 그야말로 '옮겨놓은 것 뿐'이니 오해는 없으시길 ^^;;



102보충대에서 분류가 마무리되고 버스에 탄뒤 
인솔자의 "너희는 좀 힘들거다"는 위로와 함께 내린 7사단 신병훈련소.
엉거주춤 세면백을 옆구리에 끼고 내린 한 훈련병을 처음 맞은것은
말년병장이었던 고대 99학번 내무실장이었다.
지금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냥 피식 웃고 말지만 
그 녀석은 훈련소 전체에서 그야말로 '악마'라 불리우던 놈이었다.
훈련병이건 후임이건 간에 시도때도 없이 공구실에 처박아놓고
군화발로 짓밟기 일쑤였고
훈련시에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방탄모를 후려치는건 예사였다.
같은 고대 출신이고 동기라는 명분하에서 어처구니없게도
그 녀석은 나를 콕찝어 자기 안마를 시켰고 심부름을 시켰다.
훈련시에는 교관눈치를 보면서 내 방탄모 앞꼭지를 잡고 흔들며
"씨발 내가 학교 동기라고 말도 안되보이지? 확 소리없이 죽여줄까?"
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던 놈이다.
사실 이런 관계 속에서 나 자신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있는인연 없는인연 다 같다 붙여보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이 6주가 언젠가는 지나가겠지...지나가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저 하루하루 버텨갔을 뿐이었다.


자대배치를 받고나서 들어간 내무실에는
대략 인원이 25명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처음에는 훈련소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나름 안도했더랬다.
내무실 바로 윗고참은 자기 후임왔다면서 기분좋게 챙겨주었고
내 사수도 말년인 탓에 인수인계 말고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어린 고참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기분이 더러웠던적도 많았지만 내가 군대를 늦게 온 탓이려니 하며 주섬주섬 마음을 추스리면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내 군생활의 괴로움은 숨어있었다.
그나마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한 고참은 그야말로 고참노릇을 톡톡히 하는 사람이었다.
담배를 피지 않았던 그 사람은 담배를 빌미삼아 나를 참 많이도 괴롭혔었는데 그중에서도 진지공사 시즌의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산에서 돌을캐던 도중 쉬는시간이 왔다.
그 고참은 나를 붙잡고 여자연예인 중에서 누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봤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외국 여자가수 이름을 말했던것 같다.
여기에 갑자기 발끈한 고참은 바로 이런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보아를 좋아해라. 그리고 보아 노래를 다 외워라. 지금 보아노래를 하나 부르면 담배를 피게 해주마. 대신 보아노래를 못부르면 담배는 오늘 필 수 없다."
나는 부르지 못했고 그 쉬는시간에는 담배를 피지 못했다.
다음 쉬는시간.
최선임병이었던 병장이 권하는 담배를 거절못하고 피고있는 상황이
그 고참은 그리 꼬아보였었나보다.
그 최선임병을 피해 나를 구석으로 끌고가서는 왜 담배를 피기 시작했는지 닥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시키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고 담배를 피게된 연유를 납득시킬때까지 일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새파란 이등병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난감했던 상황이 정말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들어갔던 내무실 인원이 25명이었던 상황에서
내가 전역할때는 총 인원이 12명 남짓이었다.
이 반절에 가까운 사람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면
전역했다. ㅡ_ㅡ;;;
그리고 그 사이 인원보충은 없었다.
당시 인사지침의 엄격함이 도입되면서
25명이 했던 일을 그 반절의 인원이 맡아서 하게 되었고
이 덕에 나는 상병을 달때까지 분대 막내였다.
1년이 넘도록 본부대 작업이 있을때마다 삽을 들고 나갔어야 했고
내무실당 3명씩 차출해서 하던 휴일작업에도 어김없이 가야했으며
저녁 이후에는 주간의 작업때문에 밀린 업무를 밤새 봐야했고
인원이 줄면서 2시간 정도로 늘어난 야간 경계근무도 어김없었다.
그덕에 밤새는건 하루걸러였고
그것을 제외한 내 당시 평균 수면시간은 2~3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아침 6시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바닥을 닦아야 했고
아침식사 시간에는 사무실 전체를 청소해야 했으며
저녁에는 봐야할 업무가 있어도 내무실 청소때문에 남아서
걸레를 빨고 바닥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야 했다.
언젠가 한 고참이 바닥을 닦고 있는 나에게 침상위에 쪼그리고 앉아
이렇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야~ 영포~ (당시엔 날 이렇게 불렀다 ㅡ_ㅡ;;) 지금 네가 짬밥이 어떻게 되지?"
"상병 3호봉입니다."
"야......이거 참 너 언제 이렇게 짬밥먹어버렸냐....."


간부를 잘못만나 영창갈뻔한 상황도 연출된적도 있다.
내 직속상관이라 할 수 있는 당시 인사장교는 그야말로 '개'였다.
병사가 할수있는 업무가 있고 장교가 할수있는 업무가 있음에도
자신이 할일을 나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사실 그것은 그나마 용납할 수 있었다.
사무실 막내로 온갖 업무가 떠넘겨지던 그 수많은 역경을 모두 이겨내고
나름의 업무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건
평일이건 휴일이건 수시로 병사들 모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기합과 욕설과 구타가 난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인사장교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놈의 인간은 이래저래 완전 꼬여버린 장교 인사들을
나의 그 수많은 건의와 회유와 은근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해버린 것이었다. (난 장교 인사담당이었다.)
당시 인사과장은 공석이었고 인사장교가 전권을 쥐고있는 상황에서
다른곳으로 전출가려고 하는 이 인사장교의 행태에
나는 입이 바싹타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가 연대장에게 직접 들어가서 결제를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그 인간은 전출가는 그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할까? 내가 풀어주고 갈까나? 말까나? ㅋㅋㅋ"
그 인간이 전출간 후 새로운 인사과장과 인사장교가 취임하고
감사가 들어왔을 당시에는 손댈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 당시의 악몽은 정말 상상하기 싫을 정도이다.
과장은 날이면 날마다 날 영창보내겠다고 소리질러대고
새로온 인사장교는 제대로 인수인계도 받지 못해서 어리버리하고
당시까지도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 작업에 끌려가야했고
그야말로 중간에서 치이고 치이고 또 치였다.


사실 지금까지 말한 나의 넋두리는
내 이야기 보따리의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말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정말 무수한 나름의 고통과 좌절의 역사가
내 군생활에는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솔직히 내 인생에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쪽팔리고 용납할 수 없기에 지금도 그냥 마음 한구석에 담아놓은 이야기가
사실은 더욱 많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위에서 처음 후임 맞았다고 좋아하던 고참은
지금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가끔 메신저를 통해서
"형~ 난 형의 영원한 팬 아니겠수~ 히히히"
"나 여자친구 생겼어!! 사진 보여줄테니 웃지마슈 ㅡ_ㅡ;;"
하며 애교떠는 귀여운 동생으로 남아있고

보아 노래를 못부르면 담배필 생각하지 말라던 고참은
"나 책좀 빌려도 ㅠ_ㅠ 너그 학교에는 있더라"라는 문자와 함께
음료수 한잔 뽑아주면서 내가피는 담배연기를 고스란히 마시는
한양대 공대를 막 졸업한 취업준비생으로서의 형이 되어있고

어김없이 작업에 함께 투입되었던
그 꼬이고 꼬인 군번, 영원한 막내들은
외대앞에서 내가 밥사주는 동생들이 되었으며

그 '개'같던 인사장교에게 욕먹고 얼차려 받고 싸대기 맞던 사람들은
지금 간간히 만나 소주한잔 기울이면서 당시를 회상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쓰레기 같았던 나보다 어린놈의 고참쉐리중 한놈은 어느 누구도 부르지 않는 왕따이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이다.
의무복무라는 이름의 군생활은 그렇게 한시적인 것이다.
그 특수집단 안에서 서로 이질적이고 상이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때로는 숨겨져있는 본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여건과 상황속에서 괴로워도 하고
사회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그 유치하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면서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희한하게도 그것은 추억이 된다.
물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들도 많지만
꼴에 인생의 한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라고 말이지 
적어도 그들과 함께라면
그 싫기만한 추억이
사회에서(특히 여인네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한풀이들이
회한의 웃음과 함께 자연스레 공유되는 것이다.


김일병은 나쁘다.
그래서 그는 정말 나쁘다.
모르겠다.
군대 자체를 두둔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존을 담보로 일하는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되질 않는다.

적어도 그는
그들에게 악몽을 추억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렸다는 점에서
정말 한국사회에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위를 했다.
그들은 그저 악몽속에서 살다가버렸다.
그것도 자기 동료에 의해서

그는 정말이지 나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