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계두 선생님

인터뷰 섹션의 글을 처음으로 올립니다. 그전부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작성하기는 했는데 포스트를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만족할만한 이야기로 꾸며지지 못해서 아쉽기는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뷰라고 하기에는 ^^;; 좀 그렇군요. 뭐 어쨌거나 다음에는 좀 더 알차게 꾸미기를 바라면서 첫 포스트를 올립니다.

참고로 이분과의 인연은 200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신용카드를 분실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분. 바로 이 김계두 선생님 이시다. 나에게 선뜻 2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빌려주셔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신 분. 그 이후 선생님께서는 종종 이 못난 녀석을 불러내 만남을 가지신다.

자신의 모교인 네덜란드 모 대학과 전남대에서 특강을 하시는 선생님은 이미 국제전화를 통해 나와 약속을 잡으셨다. 귀국하신지 얼마 안되서 다시 연락을 하셨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dreamer05 (앞으로 D) :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 무사히 귀국하셨군요.

김계두 선생님 (앞으로 김) : 에라이~ 이 못난 오리새끼녀석. 이번에도 내가 먼저 연락해서 보는구만. 나쁜 녀석. (머리를 쥐어박는다)

D : 아악~ 죄송합니다. 어흑~ 앗...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건 뭐에요? 불편하게 들고계시지 말고 저 주세요.

김 : 응. 너 줄라고 초콜릿 가지고 왔다. 자~ 가방에 넣어라.
(초콜릿이 든 봉투 겉에는 "돌산 김"이라는 활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D : 선생님. 식사 아직 안하셨죠? 제가 그동안 연락 못드린 벌로 점심 대접하겠습니다.

김 : 너 요즘에 뭐하는데? 회사 그만 뒀다면서? 비싼것도 못먹을텐데 됐다.

D : 그냥 걱정마시고 드시고 싶으신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점심 사드릴 돈은 있습니다. 저기 추어탕집 있네요. 추어탕은 어떠세요?

김 : 어라? 남원 추어탕이네? 야야 저기 비싸. 적어도 7천원이야. 무리야 무리.

D : 에이...걱정 마시라니까요. 그정도는 괜찮습니다.

김 : 여기는 됐고. 불낙 뚝배기 잘하는 집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여기 맛집은 내가 잘 알아.

D : 예, 그럼 그렇게 하시죠.

선생님을 만나뵐때마다 나는 아직까지 전주 촌놈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네덜란드에서도 선생님께 가이드를 받았는데 서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곳곳에 숨어있는 명소와 역사적인 유래, 맛집 등을 '견학'하는 기분으로 다니게 된다. 성신XX 고기집에서 불낙 뚝배기로 식사를 한 뒤 선생님과 차를 마시기 위해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김 : 너 미술품 좀 볼줄 아나?

D : 제가 막눈이라 그런거 볼줄 모릅니다. 인사동은 그냥 눈구경만 대강 하는 곳이죠.

김 : 그럼 오늘은 맛뵈기로라도 그냥 보자구. 너 경인미술관은 가봤어?

D : 오늘 처음 들어보는 곳입니다. 좋은 곳인가보죠?

김 : 너같은 막눈에게도 좋다라고 느낄만한 곳이다. 차도 한잔 하고. 따라와.

D : 네. 저야 언제나 선생님 뒤에서 배우는 녀석이니까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했던가. 익숙한 거리에서 두어걸음을 골목으로 옮기니 이제까지 보지못한 생소한 곳이 등장했다. 경인 미술관은 박영효 선생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으로 4개의 전시실과 찻집이 자리잡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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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마자 아름다운 정원과 테이블이 놓여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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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를 이런 곳도 있었다.



김 : 우선 전시실부터 돌아보자. 괜찮은 작품이 들어와 있으려나 모르겠네. 요즘은 학생들 습작 수준의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게 문제야.

D : 직접 그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조금 걱정됩니다. 선생님.

김 : 사실은 사실인데 뭐가 겁나나. 그리고 이 노친네를 누가 헤꼬지나 하겠어.

D : 그래도...

김 : 자 우선 여기부터 들어가자.


2개의 전시실이 준비중이어서 관람은 하지 못하고 2층으로 된 전시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은 최근 활성화된 미술품 시장지역과 요즘 유행하는 물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물론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림들에 대한 악평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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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계시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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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부탁해서 나도 한컷.



옆에 갤러리 담당자가 있어서 선생님 말씀에 진땀을 빼다가 결국 탈출. 그리고 자리를 이동해 차를 마시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명당이라시며 자리를 잡은 곳은 한옥집 안. 앉은 자리에서 밖을 보니 꽤나 운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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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두명이 떠나간 바로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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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옛 가구도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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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네덜란드에서는 어떤 특강을 하셨나요? 저번처럼 서양사상 쪽을 하셨나요?

김 : 음...이번에는 독일 여자강사가 서양사상을 맡고, 내가 동양사상을 맡았지. 테마는 산업윤리였어. 요즘같은 산업시대에서 왜 윤리가 필요한가에 대한 것을 쿵푸이즘을 바탕으로 강좌를 개설했다.

D : 아...그러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게 어떤 내용인가요?

김 :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법과 제도를 무수히 쏟아내고 있어. 하지만 결코 그것을 통해 만족이란 것을 얻을 수 없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법으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 영악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기에 굉장히 공허할 수 있어. 한마디로 '짱 난다'는 거지.

D : 앗~ 선생님. 어떻게 그 최신 표현법을 구사할줄 아시는지요?

김 : 이놈아 신기하냐? 이 늙은이도 인터넷도 하고 한다. 여튼 이러한 모순 속에서 나머지 비어있는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윤리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거야. 서양은 이미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지.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멀었어.

D : 흠....이거 여기서 선생님께 잠시 배움을 청해야겠는데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는 계속 무르익어 갔다. 2시가 채 안되서 시작한 대화가 4시경에야 마무리되었다.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고, 그 특강 내용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선생님 특유의 걱정과 잔소리도 이어졌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대화는 항상 유쾌하다. 이 연세에 이정도로 사고가 틔여있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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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마신 냉유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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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테이블 사람들에 부탁해서 한컷



김 :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세가지로 요약되니라.

D : 네.

김 : 자 말해봐 뭐라고?

D : 첫째로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라.

김 : 둘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돌아보는 것이고 셋째는?

D :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그것으로 그치지 말고 창조적으로 발휘하려는 노력을 해라. 맞지요? 제가 요약은 잘합니다. 선생님. 하하

김 : 이녀석 말은 좋아요. 아무튼 이건 정말 명심해. 알았지?

D : 넵~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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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담소를...



경인미술관에서 나온 뒤 선생님과 근처 천도교 교당과 미술관을 좀더 돌아봤다. 2천만원짜리 도자기 유물을 파는 곳은 의외로 평범한 곳이었다. 그러나 보안은 철저했고 당연히 사진도 찍을 수 없는 곳. 선생님은 그곳 회장과 잠시 인사를  나누시고 최신 카달로그 책자를 받아 자리를 나섰다. 그리고 가장 놀랐던 것은 그곳에 반가사유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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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자 이제 나는 약속이 있고 너는 어디로 가는고?

D : 저는 학교로 가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약속장소가 어디세요?

김 : 여의도야. 너랑은 정 반대네. 너랑 이야기하느라 약속시간 빠듯하게 되어버렸다. 자 얼른 가자.

D : 네. 저는 버스타고 갈겁니다. 선생님 가시는거 보고 정류장으로 갈게요.

김 : 뭐 그럼 그러던지.


선생님은 과거 고등학교 교사이자 선교사 일을 하셨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기 힘든 신기한(?) 분이다. 사실 초반에 선생님과 만나면서 이런 부분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전도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하지만 2004년부터 지금까지 그런 말씀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타 종교에 대한 인식도 여유롭기 그지 없다. 의식과 사고가 열린 사람은 역시 이런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지하철 5호선 통로로 유유히 사라지셨다. 인사동에 갤러리를 개장하려고 준비하고 계실 정도로 풍족한 분이 차는 죽어도 싫으시다며 지하철만 타고 다니신다.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신다. 잔정이 많으신 분. 언제나 먼저 연락을 주셔서 죄송할 따름이다. 다음에는 잊지말고 먼저 안부전화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나 역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