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요

"알았어. 그럼 집에 가봐. 가서 푹 쉬고."

교무실을 나오는데 짜릿한 쾌감이 밀려온다. 그래, 나도 성공했다. 조퇴도 했겠다 이제 시내로 가서 영화나 봐야겠다. 예전부터 꾀병을 잘부리는 한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은 거짓으로 온몸을 불덩이로 만들고 입술도 메마르게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자유자재로 토악질까지 하는 퍼포먼스도 가능했다. 이런 특출난 장기는 시시때때로 사용되었고 그덕에 녀석은 합법적인 탈선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그 친구로부터 전수받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비오듯 흘리는 식은땀'으로 나는 조퇴에 성공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학교 밖을 자유롭게 누비는 즐거움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방심하는 사이에 일어났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비오듯 흘리는 식은땀'을 전수한게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깜빡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5명이 넘는 녀석들이 교무실을 방문했고 놀란 선생님이 교무실에 왔던 녀석들을 병원에 집단 입원시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무실에 방문하기 위해 대기하던 수많은 녀석들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비오듯 흘리는 식은땀'을 교실에서 연습하던 도중 불시에 들이닥친 선생님에게 그 모습을 온전히 내비친 것이다. 반절이 넘는 학생들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땀을 줄줄 흘리는 장면은 경악 그 자체였다. 결국 학교에는 비상이 떨어져 구급차가 들이닥쳤고 교육감과 기자들도 몰려왔다.

조금 더 많은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려던 귀여운(?) 거짓말은 겉잡을 수 없는 파장을 불러왔다. 대수롭지않게 여겼던 일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커지다니. 반 전체가 병원으로 실려가 주사바늘까지 꼽는 생난리 이후 우리들의 꾀병은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꾀병의 전도사였던 녀석은 들키자마자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나가시는 녀석의 집에 아무리 전화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꾀병의 혐의가 자꾸 드러나기 시작했다. 들킨 녀석들은 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마음약한 녀석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사태가 이지경에까지 이르자 자진해서 자신의 꾀병을 밝히는 녀석도 나타났다. 하나같이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다고, 그저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말이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우리는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에게, 교장선생님은 교육감에게, 교육감은 기자들에게 차례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잠시 꾀병을 부린것 만으로 모두가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지만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때 그 거짓말은 정말 사소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우러러볼만한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도, 한때 마음을 다해 애정을 보냈던 연예인도 생각보다 거짓말쟁이가 많았다. 꾀병으로도 모두가 고개를 숙였는데 학력을 속여 성공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당연한것 같다. 하지만 뻔뻔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뭔지. 그들은 어릴적 철없던 학창시절의 나보다 더 모르는것 같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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