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월식

개기월식은 예로부터 변화의 조짐을 의미했다. 평소와는 다른 달의 모습에 사람들은 불안해 했고 정치꾼들은 이를 교묘하게 활용했다. 월식이 시작되면서 붉으스름하게 변하는 달의 색과 마침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모습은 무언가 큰 변화가 닥쳐올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개기월식은 지구에 미묘한 기후변화를 불러오기도 하는데 이는 위의 분위기를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달의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일이다. 우연찮게 지구의 그림자를 온전히 받을 뿐인데 오히려 지구에서 불안하다는둥, 사악한 조짐이라는 둥 난리를 치니 말이다. 태양의 빛을 온전히 받아 은은하게 뿜어내던 자신의 자태가 사라지는 것도 억울한데 지구는 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인 존재라지만 이정도의 오해라면 충분히 화날법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물만이든 의심이든 입달려서 내뱉는건 지구인들 뿐이고 달은 그저 조용히 들을 수 밖에 없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구간을 도는 뻔한 달이기에, 그래서 예측 가능하기에 지구는 만만하게 보고 자기 멋대로 지껄인다. 그래서 묵묵히 참고 살아가는 달일지라도 개기월식때 만큼은 그동안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르는지도 모른다.

민중이라는 존재도 어쩌면 달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반 사람들은 언론이며 미디어며의 온갖 잡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살아간다. 때론 화도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하지만 그저 꾹 참고 들어줄 뿐이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진실이 존재하건만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존재들이 있다. 민중은 이들을 차곡차곡 쌓아 기억해놓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그 중간자들이 자신들의 그림자로 민중을 덮쳐올때 붉게 달아오르는 달처럼 민중도 분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개기일식이 찰나에 이뤄지는 일인 것처럼 언론도 대중의 눈을 언제까지나 가릴 수는 없다. 달과 달리 스스로 움질일 수 있는 민중은 일정 주기마다 자신의 궤도를 변경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민중이 대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체제의 가치는 그래서 특별하다.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미디어나 정치권이 분노한 민중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려 할때면 오히려 민중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 지구가 달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지언정 달의 궤도를 수정할 수 없듯 언론이 민중의 눈을 가릴 수 있는 것도 잠시 뿐이다. 저 큰 태양처럼 진실이란 영원히 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