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화약내음의 추억과 음악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이 끝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대에서 받는 훈련이 모두 종료되었다.
훈련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격훈련 중에는 근처에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이 특정한 공간, 특별한 상황에서만 접할 수 있는 감각의 촉은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마치 흑백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각각의 특별한 신들이 차곡차곡 머리를 스쳐 지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귀에서는 아련한 멜로디들이 들려온다.
오늘은 바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 2001~2004 추억과 음악.

군대에서의 기억은 무릇 안좋기 마련이다.
특히 아래와 같은 기억들은...슬쩍 뇌관만 건드리면 터지는 폭약처럼
갑자기 내면의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삭막하고 저열한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군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간사한 인간의 기억 미화 과정일 수 있지만
다행히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슬쩍 미소가 지나가게 되는.

도심에서는 이런 하늘을 볼 수 없다.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민간인통제선 안에서
나에게 가장 큰 혜택(?)은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자연경관 이었다.
야간 경계근무를 나가게 되면 그야말로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만이 길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다.

누군가는 휴가복귀 하면서 별자리책을 가지고 와서
하늘을 목빠지게 바라보기도 했던 그곳.

일병때쯤으로 기억한다.
평소 말수가 적은 선임 한명과 새벽 3시경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부스럭부스럭 일어나 근무준비를 하는 나에게 선임은 말했다.
"너는 모포를 챙겨라"

잠결에 모포를 둘둘 말아서 근무지로 나간 나에게 선임은 말했다.
"안 펴고 뭐해?"

20대 초반 두 녀석은 한쪽에 모포를 펴고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별은 가득했고 선임이 챙겨온 카세트플레이어에서는 '별이 진다네' 흘러나왔다.
(원래 정말 이러면 안되지만 ^^;;)

선선한 가을바람과, 쏟아질 듯한 별들과, 여행스케치의 음악.
그 순간의 특별함은 한참 힘든 일병 나부랭이 군 생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보다 두살 많은 형이었는데 그 분은 요즘 뭐하고 사시려나...




2000년 이후 산 첫 테잎.


대학에 입학했던 1999년 무렵부터 이미 카세트 테잎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CD와 소리바다, 넵스터가 주요 음악감상 창구였던 그 시절.

하지만 군대에서 CD플레이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휴대하고 있을 때 몸을 함부러 굴리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CD와 CD케이스는 얇고 부서지기 쉬워서 군장 등에 싸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많이 사용했던 것이 카세트 플레이어.

상병을 달면서 드디어 카세트 테잎 플레이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휴가를 나가던 선임이 이를 기념하여 테잎을 하나 선물해 줄테니
쪽지에 적어주라고 했다.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적었던 앨범이 바로 이것.
Travis의 The Invisible Band.

그런데 휴가복귀한 선임은 툴툴대기 시작했다.
동부터미널 음반가게에 들어가서 "트라비스 앨범 주세요." 라고 했던 것.
주인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했고 한참 실갱이 끝에 결국 이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하~ 트래비스~"라며 씩 웃는 주인 아저씨를 뒤로 하고
선임은 얼굴이 빨개져서 나왔었더랬다.

실컷 사다 준 성의에 헤헤 거리지도 못하고 그저 굽신거리며 감사하게 받았다.
밤에 침낭 속에서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청량하게 들려오는 그들의 음악에, 근 1년만에 만나는 제대로된 음악에 기쁨의 눈물을...





나락으로 떨어질때 필요한 것. Parachutes.


지울 수 없는 기억. 상처.
그것을 치유하는 각자의 방법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역시...음악 이었다.
군대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죽을 것 같은 괴로움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견디다가
늦은 밤 모두 잠이 들었을 무렵, 눅눅한 침낭 속에서 이 곡과 함께 끅끅거렸던 기억...
뒤돌아 보면 그나마 이 조차 없었다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Oh no, I see,
  A spider web is tangled up with me,
  And I lost my head,
  The thought of all the stupid things I'd said.

  Oh no, what's this?
  A spider web, and I'm caught in the middle,
  So I turn to run,
  The thought of all the stupid things I've done,

  And I never meant to cause you trouble,
  I never meant to do you wrong,
  And I, well if I ever caused you trouble,
  And oh no, I never meant to do you harm.

  Oh no, I see,
  A spider web and it's me in the middle,
  So I twist and turn,
  Here am I in my little bubble,

  Singing I, never meant to cause you trouble,
  And I, never meant to do you wrong,
  And I, well if I ever caused you trouble,
  Oh, no I never meant to do you harm.

  They spun a web for me,
  They spun a web for me,
  They spun a web for me.





돌고 도는 기억.
돌고 도는 상황.

지금 이 기분도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