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Chris Botti Live In Seoul, with Band (2011)

공연을 통해 앨범과 라이브의 간극을 발견할 때가 있다. 라이브가 앨범보다 훨씬 뛰어난 경우, 카타르시스는 극대화 된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묘하게도 지난 Muse의 라이브를 처음 접했을 때 이후 이번 Chris Botti의 공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현재 재즈신에서 눈여겨 봐야할 트럼페터는 두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탈리아의 트럼펫 음유시인 빠올로 프레수(Paolo Fresu), RH Factor 라는 프로젝트로 독창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 그리고 이 두사람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동년배 트럼페터가 크리스 보띠(Chris Botti)이다. 사실 보띠는 스팅, 안드레아 보첼리와의 협연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상 그의 앨범은 기존 스탠다드를 트럼펫으로 다시 연주한 스무스 재즈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당연히 아티스트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마련. 좋게 말하면 편안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식상하다. 재즈 애호가들의 우선순위에 들기에는 2% 부족한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션들의 보띠에 대한 러브콜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요요마, 조쉬 그로반, 조니 미첼, 아레사 프랭클린 등과 협연이 진행되면서 그의 그의 정갈하고 깔끔한 연주 스킬은 재조명을 받게 된다. 어느 뮤지션과 협연해도 모든 스타일에 착 달라붙는, 하지만 흡수되지 않는 그의 '편안한' 연주는 의외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가장 편안한 연주는 악기와 연주자가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나온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다만 그의 너무나도 준수한 외모와 스타일은 여러 음악적 편견을 부추기는데 한 몫 하기도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 보띠는 일정 정도의 연주실력과 여러 뮤지션과의 협연이 참 좋다라는 정도의 인식, 그리고 텁텁하고 흐릿한 구름이 드리우면 달콤쌉싸름한 그의 카카오 초콜릿 연주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 정도. 때 마침 오전에는 잠시 비가 내렸고, 이때문에 더욱 짙어진 가을냄새가 일요일 오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라이브를 듣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에 방문했다.


'너무 잘생긴 외모로 실력이 평가절하된 연주자'라는 수식어를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연주 시작부터 엄청난 길이의 안정적 호흡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다. Setlist는 역시 대부분 재즈 스탠다드였는데,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기우였을 뿐이었다. 초반부터 관객들을 촉촉하게 적신 When I Fall In Love에 이어 게스트로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캐롤라인 캠밸의 애잔한 선율과 함께 한 곡은 Emmanuel과 Cinema Paradiso (Love Theme). 너무 잘 알고 유명한 곡은 감상할때 자꾸 원곡과 비교하는 몹쓸 버릇이 발동하는데 이들의 협연에는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게스트 리사피셔(Lisa Fischer)의 등장. 사전에 아무 정보도 없었기에 그녀의 등장은 꽤나 놀라웠다. (뒤늦게 예매 사이트에 적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당연히 그녀의 등장과 함께 공연은 달궈지기 시작했다. Look Of Love에서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리사의 스캣과 보띠의 트럼펫 연주가 볼만 했고, 처음으로 1층 객석에 없었던 것이 후회 되었던 The Very Thought Of You에서는 아예 무대를 내려와 관객석 옆에서 공연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협연한 곡으로 유명한 Italia가 연주될 때는 고음과 저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리사의 실력이 한층 더 빛을 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1959년도 명반, Kind of Blue 중에서 Flamenco Sketches를 연주한 부분이었다. 스탠다드가 주류를 이루는 공연에서 재즈 애호가들의 관심과 전체 프로그램의 흐름을 신선하게 전환하는데 모두 성공한 케이스. 스타일은 달라도 그 저변의 정서를 이어가는 트럼페터는 보띠라는 말이 있는데, 그 대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 이었다. 무엇보다 보띠 본인이 마일즈 데이비스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Hallelujah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Iron Man을 연주하기도 했다. 재즈 뮤지션의 Iron Man 연주는 Bad Plus에 이어 두번째로 들어보는데 We Will Rock You에 이어 공연 퍼포먼스에서 사랑받는 리스트로 올라오는듯 하다. 객석에서 어린아이 두명에게 스틱을 쥐어주고 Time To Say Goodbye (Con Te Partiro) 절정 부분 퍼쿠션 러시를 연주하게한 퍼포먼스와 삐아졸라(Astor Piazzolla)의 Oblivion까지 앵콜로 연주하며 공연은 마무리 되었다.


전체적으로 넘실대는 파도처럼 적절하게 잘 배합한 Setlist와 깨알같이 소소한 프로그램들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저는 제 공연에서 관객들이 얼마나 즐겁게 즐기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음악을 들으러 오는지가 중요합니다."라는 그의 인터뷰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랄까. 소소한 재료로 만들어낸 풍성한 만찬을 즐기고 온 기분이다.

아쉬웠던 부분은 베이스의 카를로스 푸에르토(Carlos Puerto)와 스팅과도 협연했던 드러머 빌리 킬슨(Billy Kilson)의 호흡이었는데, 특히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줘야할 카를로스의 베이스가 필링에 너무 충실했던 나머지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음악적 지식이라곤 전무한 통역과, 자꾸 엉뚱한 곳을 비추는 핀조명도 전체 분위기를 흐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이다. 넓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크리스 보띠의 트럼펫 연주가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이런저런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앨범과 라이브의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라이브가 앨범에서 전해준 감흥보다 떨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앨범을 훨씬 상회하는 라이브 공연은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이번 보띠의 라이브는 이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묘하게도 예전 Muse의 라이브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랄까. 앨범에서 말끔하게 떨어졌던 그의 연주가 라이브에서 얼마나 파괴력을 가지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쓸쓸한 가을길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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