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재즈 베이시스트 유영민 첫번째 앨범 발매기념 공연, First Love :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에서 베이시스트의 존재는 아직 미미하기만 합니다. 재즈 토양이 아직 척박한 한국에서 파트별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뚜렷하고, 실력있는 베이시스트들은 대중과 호흡하기 보다 수면 아래에서 수 많은 음악공간들을 메꾸기 위해 동분서주하는게 대부분이죠. 장르를 불문하고 따져봐도 대중과 호흡하고자 주도적으로 나섰던 베이시스트는 서영도씨와 Mowg(이성연) 정도 뿐 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서영도씨는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이나 '서영도&프렌즈' 등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만날 수 있지만 (요즘 <나는 가수다>에도 정기 출연 중이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했던 Mowg(이성연)의 초기 앨범은 아예 절판되서 다시 구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다른 음악활동은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재즈 베이시스트 유영민의 등장은 가뭄 속의 단비와 같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베이시스트의 등장은, 콘트라베이스의 굵직한 선율이 메인 프레이즈를 잡아가는 연주는 신선하기 그지 없죠. 개인적으로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이나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를 처음 접했던 그 느낌 마저 받았습니다. 유영민씨의 공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였죠.


글루미카페 500회 특집에서 모 청취자의 추진력 덕에 이런 저의 일정에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추천해도 부끄럽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이런저런 상황을 거쳐 최종 관람인원은 13명. 올림푸스홀에서 만나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인사, 무료 공연관람 복불복 등 시끌벅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공연장으로 입장했습니다.


무대에는 식스텟 구성의 연주자들이 등장했고 첫번째 곡, '너에게 못한 말'이 시작됐습니다. 유영민씨에게 들었던 바에 의하면 연주자 구성이 불과 일주일 전에 확정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초반 연주에서 밸런스가 살짝 무너지는 부분이 보였죠. 베이스는 전체를 하나로 끌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연주자들도 살짝 당황한 눈치. 하지만 각 파트의 솔로가 지나가고 연주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이것 또한 재즈연주를 듣는 재미 중 하나. 다행히도 두번째 곡, '꿈속에서'가 연주되면서 전체적으로 안정되어가는 모습을 보이는군요.

공연이 진행되면서 조금은 어눌하고 순박한 유영민씨의 멘트도 이어집니다. 긴장한 목소리로 중간중간 말을 더듬기도 하는 모습은 이번이 첫번째 단독 공연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네요. 연주에서 보여주는 원숙미와는 또 다른 모습. 그가 결혼한지 4개월된 새신랑만 아니었다면 아마 많은 여성분들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 적응기가 지나가면서 관객들은 점점 공연에 빠져듭니다. '여우비', '거울', 'Always' 등 1집 수록곡들이 지나가고 아직 발표되지 않은 'Winter Lake'와 '거북선'이 연주됩니다. 유영민씨의 2집은 이미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Winter Lake'는 2집에서 꼭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야말로 겨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명곡이네요. '거북선'은 독특하고 대담합니다. 빅밴드 구성으로 연주되면 굉장히 멋지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튼 이 두곡으로 2집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1집 타이틀인 'First Love'가 연주되는군요. 이 곡의 베이스 선율은 언제 들어도 정말 일품 입니다. 공연 영상 촬영분은 유튜브에 안올라 오려나요. 아쉽지만 M/V로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이어서 모든 악기가 흥얼거리듯 연주하는 'Do Song', 국내 재즈 뮤지션들에게 사랑받는 '엄마야 누나야' 멜로디가 차용된 '섬진강'까지 이어집니다. 모든 관객이 손뼉으로 박자를 맞췄던 앵콜곡과 함께 큰 박수로 공연은 마무리. 그리고 중간에 글루미카페 정모까지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시는군요. 이 자리에서나마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함께 관람한 사람들이 모두 CD를 구매하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공연장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나누던 유영민씨에게 모두 다가가서 사인 공세를 펼치는군요. 이 모습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도 굉장히 뿌듯합니다. 제가 궁금했던 사람들의 감상평 몇개를 추려 봅니다.

Monk : 자작곡만으로 이런 공연을 펼치다니 놀랍다. 굉장히 멋진 뮤지션이 등장한거 같다.

참고로 이 Monk라는 친구는 저와 매번 재즈공연을 함께 보는 또 다른 재즈 매니아 입니다. 초간부터 MM Jazz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장하고 있으며, 베로나에서 서로 키스자렛 공연을 봤다며 자랑하다가 둘 다 본 사실을 알고 머쓱해지기도 했던 사이죠.


별난천사 : 저 이 뮤지션이 너무 좋아졌어요. 멜로디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트럼본 연주자 이한진씨! 정말 멋졌어요.

LIBE : 아직까지는 어려운거 같아요. 그런데 재즈에 빠지면 중독되어 버린다는 이야기가 뭔지 얼핏 알게된 공연 입니다.



베이스는 재즈 앙상블에서 기둥과 같은 존재 입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각 파트의 화려한 솔로 연주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 중심에서 때로는 끌어주고 때로는 느슨하게 놓아주며 밸런스를 맞춰가는 조율사. 이런 조율사가 심지어 곡의 원작자라고 한다면 그 역할이 배가 될 수 밖에 없죠. 재즈 베이시스트 유영민은 바로 이런 존재 입니다. 그는 곡을 만들고 함께 연주할 파트너를 찾고, 그들을 이끌어가는, 그야말로 존재감이 극대화될 수 밖에 없는 역할을 맡고 있죠. 그리고 이번 공연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하고 왔습니다.

무엇보다 곡이 정말 좋아요. 프렐류드, 젠틀레인, 워터컬러 등 멋진 곡들을 만드는 국내 재즈 뮤지션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유영민씨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 같습니다. 베이스가 주도하는 보기 드문 구성, 진득하게 뽑아내는 유려한 멜로디와 화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는 유연성. 한국 태생의 재즈 스탠다드 곡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뮤지션 입니다. 재즈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유영민이라는 재즈 베이시스트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일상과 추억이 공존하는 음악공간, 글루미카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