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piano tour in Seoul 2011


지난 1월9일. 류이치 사카모토 내한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이런저런 일들과 글루미카페를 정상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사투(?) 덕에 이제야 올리게 되었군요. 예전에도 내한한 일이 있었지만 류이치옹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Playing the piano tour라는 명칭 자체에서 'BTTB 시리즈는 빠질 수 없겠군'이라는 예감이 있었고, 다른 곳에서 공연한 셋리스트 등을 통해서도 명확했기에 기대를 가지고 바로 질러줬습니다.

어서오세요. 할아버지. 참 곱게도 늙으십니다 그려.

예술의전당 참 오랜만입니다. 하하...하하하...

현수막. 이런 요소들이 공연보기 전에 참 사람 설레게 하죠.


뭐 혼자보는 공연인데 서두를거 없지요. 느즈막하게 공연 임박한 시간에 맞춰 갔습니다. 날씨는 무지하게 춥더군요;; 담배 한대 필까 했는데 그냥 후다닥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7시40분쯤 도착해서 표 받고 후배 만나서 살짝쿵 인사하고 자리로.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 2층 맨 앞자리 가장자리. 이번에는 왼편.


무대는 단촐합니다. 사운드를 꽤나 조밀하게 모아줄 요량이었는지 양 사이드에 스피커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랜드피아노 한대가 덩그라니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볼일은 아닙니다. 야마하의 디스클라이버 시스템이 장착되어있기 때문이죠. 미리 세팅해 놓거나 혹은 방금 연주한 부분을 계속 루프시켜 두대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효과를 내는 장치 입니다. 보통 이런 장비는 기타에서 자주 이용하는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역시나 피아노를 활용하는군요. 특히 발이나 손으로 버튼을 꾹꾹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굉장히 민감하고, 어렵고, 비싼(;;)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덕분에 공연 내내 피아노를 운지하는 우아한 손동작이 멈추지 않았죠 :)

공연 직전, 디스클라이버 시스템에 대한 고지.


이번 무대연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공연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 위와 같은 공지가 있는 상태에서 서서히 암전으로 변해가는데 완벽한 암전으로 들어가기까지 5분 가량을 할애한거 같군요. 앞뒤를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천천히 변해가는 그라데이션 효과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만들어 갑니다. 급하고 바쁜 한국인의 성격상 쉽지 않은 적응인데, 이걸 다 참고 견디는 저와 관중들을 보면서 '역시 류이치 사카모토의 입지가 굉장하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죠. 그리고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것 조차 중간의 잠깐의 찰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공연장은 천천히...적막하게...서서히...암흑으로 빠져듭니다.

그리고 공연 시작. 초반에는 Out Of Noise 앨범 곡들이 흘러나오는군요.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알듯 모를듯한 묘한 흑백영상이 모니터를 채웁니다. 미니멀리즘의 정수. 피아노현 하나를 긁을때도, 음 하나를 찍을때도 굉장히 신중하고 적막합니다. 솔직히 즐겁고 흥미롭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 하지만 사색하고 휴식할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몽롱하고 아득한 기분.

그러다 문득 하나의 챕터가 끝나고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정신 퍼뜩. 류이치옹이 입을 열었군요. 하지만 일본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모두 한국말. 신경써준건 무척이나 감사하긴 했는데 알아먹기는 쉽지 않더군요 ^^;;; 

이후 진행되는 Playing the piano 앨범 곡들. 사실 이 앨범이 나왔을때만 해도 '거 참...이번에도 우려먹으시나...' 할정도의 베스트앨범 격인 피아노 앨범이었는데 막상 이번 공연에서 연주해준다고 하니 참 다행입니다. 왠만한 명곡들이 빠지지는 않을테니 말이죠 :) 그런데 중간에 순간 '흡...'하고 숨이 멎었습니다. Tango!! 그저 감사할 따름.

막판에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스페셜 게스트가 있다며 소개를 해줬는데 MC스나이퍼;; 2004년도 Chasm 앨범에서 둘의 협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Undercooled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원곡은 원래 랩에 최적화(?)되어 있던 곡이었는데 어떻게 풀어내나 했더니 역시 류이치 사카모토는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훌륭하게 라임을 맞춰주는군요. 뭔가 묘하고 재미있던 부분.

공연은 그렇게 서서히 마무리되어 갑니다. 

그의 빈자리엔 쓸쓸한 핀조명 하나만이 비추고 있군요.


공연이 끝나고 나서 제가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었더군요.
뭐 한바탕 꿈을 꾼듯한 공연이었습니다. 초반은 좀 지루한듯 했지만 중반부터 쏟아지는 BTTB 시리즈들에 넉다운. 무지하게 쓸쓸한 마음안고 커피 하나, 담배 한가치랑 타박타박 집에 가렵니다.

[Set List]

01. Glacier
02. Improvisation(プリペアド・ピアノとして)
03. Hibari
04. still life
05. In the red
06. Nostalgia
07. A flower is not a flower
08. Bibo No Aozora
09. Tango
10. Mizu No Naka No Bagatelle
11. Before long
12. Loneliness
13. Sheltering sky
14.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5. Behind the mask
16. Happy end
17. Thousand knives
18. Undercooled (w MC스나이퍼)
19. Aaua


공연이 끝나고 나와서 바로 한가치 물지 않을 수 없더군요.


피아노음 하나하나가 시간과 공간을 배회하는 가운데 그 나머지 여백들 만큼이나 마음이 허했던 공연. 사실 공연 끝나면 맥주나 한잔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바로 접었습니다. 쓱싹쓱싹 지워버린 공간을 알콜로 채우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을거 같다는 위기감이었다랄까요...

이렇게 2011년의 첫 공연관람은 그날의 서슬퍼렇게 찬 공기만큼이나 쓸쓸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다음 공연은 좀 상투적이고 말초적이어야겠어요.
후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