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 30주년 기념 콘서트
Music 2007. 5. 17. 16:23
다음달인 6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가수 김수철이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갖는다고 한다.
이제 그는 단순한 뮤지션이 아니라
장인정신으로 똘똘뭉친 "예술인"이다.
그의 공연을 보고싶은데
팽만식 형님 공연을 이미 질러버려서 총알이 없는 상황 ㅠ_ㅠ
아쉽기 그지없다.
그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딸깍발이의 모습이 살아있음에
다시 존경하고 감동받았다.
1957년 4월 7일생인 김수철은 중학교 2년 때 어쿠스틱 기타를 잡으면서부터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엔 통기타를 못 치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통기타가 대유행이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며 기타 연주를 하다 지미 헨드릭스 의 음악에 심취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로 전향하고 CCR , Grand Funk Railroad , James Gang , Deep Purple 의 연주를 카피하면서 속주의 묘미를 느껴간다. 그는 중3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하는데 작은 거인 시절 대부분의 곡이 이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78년에 그는 '작은거인'을 결성하였다, 각 대학의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젊은이들로 구성된 작은 거인은 리드기타와 보컬 김수철, 건반 김근성, 베이스기타 정원모, 드럼 최수일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작은 거인이 '일곱 색깔 무지개' 로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서 그룹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연주와 음악실력이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뛰어난 연주실력을 갖추고 있는 작은 거인은 79년 1집을 낸다. '일곱 색깔 무지개’등 하드록과 록음악을 중심으로 포크 발라드풍의 '내일’등의 음악을 선보였으며, 2집에는 소울 재즈, 재즈 록, 하드 록, 발라드 등 각 장르의 곡들이 고루 수록되어 있다.
그는 그룹 활동을 하면서 작곡가로써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79년에서 81년까지 3회 연속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그가 작곡 한이광조 의 '행복'과 김태화 의 '변덕스런 그대'가 입상한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서양의 것을 따라가는 국내 음악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껴 '우리의 소리'를 찾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그는 우리의 소리에 대한 작업을 계속히고 있다.
또한 그는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은마는 오지 않는다’, '서편제' 등의 영화 음악 작업을 하면서 성과를 올린다.
작은 거인이 해체되고 83년 솔로로 전향 '못다 핀 꽃 한 송이', '별리' 등의 곡이 담긴 1집을 낸 그는 매년 각종 연말 가수상을 휩쓴다.
첫 번째 국악 앨범의 실패 이후 끊임없이 국악에 대한 공부를 해왔던 김수철은 86년 4집 앨범에서는 국악가요를 다시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잊어버려요’를 다섯 가지로 편곡하고 '세월은 가네’를 네 가지로 편곡하는 등 멜로디에 얽매이지 않는 변화무쌍한 편곡능력을 펼쳐 보였다.
86년부터는 아시안게임 전야제 음악을 맡으며 행사음악을 시작하였다. 87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작 '영의 세계’로 무용음악도 시작하게 된다.
86년 아시안게임 전야제의 피날레 음악을 통하여, 그 때까지 생소했던 국악과 록의 조화를 보여줬으며 이 곡부터 '기타산조'라는 연주곡 작업이 시작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 전야제 음악의 호평에 힘입어 국내에서는 대중 음악인으로 유일하게 88 서울올림픽 전야제의 음악감독 및 작곡을 맡고, 우리 고유의 소리와 첨단 신디사이저를 조화시켜 특수효과를 살린 도시 불꽃축제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89년에는 그의 7집 앨범이 국내에서는 최초로‘ONE MAN BAND’앨범으로 발표되었다.ONE MAN BAND는 컴퓨터나 기계적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악기를 혼자 직접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 데 김수철은 이 앨범에서 혼자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드럼, 건반, 기타 등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여 진정한 의미의 ONE MAN BAND를 보여 주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 '정신 차려'가 큰 인기를 모은다.
91년 발표한 8집 음반 [난 어디로]는 30여명의 연주인들과 팀을 이뤄, 팝 발라드, 블루스, 라틴음악, 펑키, 동요, 록, 소울, 국악가요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지금은 가수라기 보다 뮤지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김수철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국악에 대한 열정을 계속 쏟아 붓고 있다. 그는 현재 2002년 월드컵 음악 작업중이며, 외로운 음악적 고행을 계속하고 있다.
글 / 김정위 in changgo.com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며 기타 연주를 하다 지미 헨드릭스 의 음악에 심취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로 전향하고 CCR , Grand Funk Railroad , James Gang , Deep Purple 의 연주를 카피하면서 속주의 묘미를 느껴간다. 그는 중3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하는데 작은 거인 시절 대부분의 곡이 이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78년에 그는 '작은거인'을 결성하였다, 각 대학의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젊은이들로 구성된 작은 거인은 리드기타와 보컬 김수철, 건반 김근성, 베이스기타 정원모, 드럼 최수일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작은 거인이 '일곱 색깔 무지개' 로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서 그룹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연주와 음악실력이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뛰어난 연주실력을 갖추고 있는 작은 거인은 79년 1집을 낸다. '일곱 색깔 무지개’등 하드록과 록음악을 중심으로 포크 발라드풍의 '내일’등의 음악을 선보였으며, 2집에는 소울 재즈, 재즈 록, 하드 록, 발라드 등 각 장르의 곡들이 고루 수록되어 있다.
그는 그룹 활동을 하면서 작곡가로써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79년에서 81년까지 3회 연속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그가 작곡 한이광조 의 '행복'과 김태화 의 '변덕스런 그대'가 입상한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서양의 것을 따라가는 국내 음악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껴 '우리의 소리'를 찾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그는 우리의 소리에 대한 작업을 계속히고 있다.
또한 그는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은마는 오지 않는다’, '서편제' 등의 영화 음악 작업을 하면서 성과를 올린다.
작은 거인이 해체되고 83년 솔로로 전향 '못다 핀 꽃 한 송이', '별리' 등의 곡이 담긴 1집을 낸 그는 매년 각종 연말 가수상을 휩쓴다.
첫 번째 국악 앨범의 실패 이후 끊임없이 국악에 대한 공부를 해왔던 김수철은 86년 4집 앨범에서는 국악가요를 다시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잊어버려요’를 다섯 가지로 편곡하고 '세월은 가네’를 네 가지로 편곡하는 등 멜로디에 얽매이지 않는 변화무쌍한 편곡능력을 펼쳐 보였다.
86년부터는 아시안게임 전야제 음악을 맡으며 행사음악을 시작하였다. 87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작 '영의 세계’로 무용음악도 시작하게 된다.
86년 아시안게임 전야제의 피날레 음악을 통하여, 그 때까지 생소했던 국악과 록의 조화를 보여줬으며 이 곡부터 '기타산조'라는 연주곡 작업이 시작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 전야제 음악의 호평에 힘입어 국내에서는 대중 음악인으로 유일하게 88 서울올림픽 전야제의 음악감독 및 작곡을 맡고, 우리 고유의 소리와 첨단 신디사이저를 조화시켜 특수효과를 살린 도시 불꽃축제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89년에는 그의 7집 앨범이 국내에서는 최초로‘ONE MAN BAND’앨범으로 발표되었다.ONE MAN BAND는 컴퓨터나 기계적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악기를 혼자 직접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 데 김수철은 이 앨범에서 혼자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드럼, 건반, 기타 등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여 진정한 의미의 ONE MAN BAND를 보여 주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 '정신 차려'가 큰 인기를 모은다.
91년 발표한 8집 음반 [난 어디로]는 30여명의 연주인들과 팀을 이뤄, 팝 발라드, 블루스, 라틴음악, 펑키, 동요, 록, 소울, 국악가요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지금은 가수라기 보다 뮤지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김수철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국악에 대한 열정을 계속 쏟아 붓고 있다. 그는 현재 2002년 월드컵 음악 작업중이며, 외로운 음악적 고행을 계속하고 있다.
글 / 김정위 in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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