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인디" 공개방송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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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나의 객기를 받아준 동기 임원들

집에서 돈을 끌어와 행사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준 쫄룡이
3일동안 스폰서를 얻느라 그야말로 분주하게 발로 뛰어준 빵순이
조용히 뒤에서 이벤트와 소품준비까지 착착 진행해준 뻥드리아
난감한 상황임에도 아무 군소리 없이 훌륭한 진행을 해준 99최고 아나

어느새 6년이나 지난 인디인디 공개방송을 편집하면서
이들이 떠올랐더랬다.


물론
고연연합방송제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친 기간에
8시부터 전화해서 눈꼽을 붙인채 방송국에 나오게 한 뒤
티저 홍보용지를 창작(?)하고 만들고 공고하도록 했음에도
군소리없이 나름 즐겁게 일해준 당시 모든 사람에게도
새삼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작년 언젠가 미니홈피에 끄적인 말...>




"인디 인디"에 대한 추억


대학방송국에서 방송을 처음 시작할때 잠시나마 시련이 있었다.

1999년 학교 스피커에서는 민중가요가 흘러나오는게 기본이었고
가요나 팝이 나가는 것은 아침 안암골과 점심시간 일부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음악방송은 2학년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1학년들은 취재를 기반으로 한 방송을 만드는게 첫 걸음이었고
그때문에 내 동기들은 여행, 연극, 스포츠, 문학 등의 방송을 기획했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방송을 하겠다고 고집했다.
당시 기획부장이었던 미영이 누나를 비롯한 임원진들은
이런 내 생각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한 분위기였다.
1학년 따위가 편하게 음악이나 틀고있는 모습은 내가 선배라도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작기획서 발표 날.
나는 "인디 인디"라는 방송을 제작하겠다고 천명했다.
다만 단순히 음악을 트는 방송이 아니라
홍대와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밴드들을 직접 스튜디오로 매주 데리고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기획부장이었던 미영이 누나와도 개인담판을 지었다.

당시 내 주장은
"대학방송은 분명 방송계의 언더그라운드다. 언더그라운드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담지 못한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이렇게 맥이 닿아있는 영역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책상에서, 콘솔에서 만드는 방송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매주 밴드 한팀을 섭외하겠다. 취재비, 섭외비 지원이 나오면 좋겠지만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사비로라도 이를 충당할 것이다."
였다.

결국 내 방송은 이뤄질 수 있게 되었고
그나마 몇 없던 동기 아나운서들이 내 방송을 하겠다고 자원해서
지원자 중에서 아나운서를 고르는 팔자에 없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두명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한명으로 중간에 축소했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첫 방송을 시작했다.
밴드 섭외를 위해 홍대 클럽을 누비고 다녔고
아나운서도 공연을 봐야 제대로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서 불러냈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서는 혼자 다니는게 편하다는 사실을 인지해 그냥;;; 혼자 다녔다.)
클럽 출입비에 맨날 자정이 넘어서 끝나는 공연으로 인한 택시비, 섭외를 위한 술값 등
돈은 무지하게 깨지고 몸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취재를 명목으로 방금 공연한 밴드들을 만나는게 재밌었고
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어디든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게 재밌었고
매주 새롭게 등장하는 밴드에 신기해하던 국원들의 모습이 재밌었고
내 방송에 피드백을 주는 학교 외 사람들과 언론들이 재밌었다.

(2000년 1학기 "인디 인디" 中 마지막 방송. 이발쑈포르노씨 편)

그렇게 한학기가 지나가고
이 방송을 한 학기 연장해서 방송하기로 맘먹었다.
저녁 30분에서 점심 1시간으로 연장해서.

그리고 내가 그동안 품어왔던 일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디 인디" 공개방송.

고연연합방송제가 끝난지 얼마 안되서
방송국 재정과 국원들의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포기하기는 싫었다.

임원진들은 지금 전체적으로 힘든 상황인데 조금 나중에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런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날씨 때문에 야외공연은 불가능했다.
다음 학기에는 내가 임원을 해야하는 상황. 정규방송을 못하게 된다.
정말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사였다.

그냥 그대로 밀어붙였다.
임원회의에 홀로 들어가 담판을 지었다.
"지금 아니면 그냥 하지 않겠다. 제대로된 행사가 아니면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나의 동기들은 나를 믿어주었다.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은 촉박했다.
3일만에 조명, 음향, 무엇보다 밴드들을 섭외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아침 7시에 방송국에 나와서 8시까지 국원 모두에게 전화를 돌리고 홍보활동을 독촉했다.
홍보물 찍을 돈이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독특한 홍보를 해보자는 생각에
방송국 캐비넷에 박혀있던 페인트, 크레파스, 물감, 스프레이를 몽땅 꺼냈다.
방송국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티저광고였다.

.
.
.

그렇게 행사는 2000년 깊은 가을저녁에 열렸다.

그리고 그 흔적은 저 짤막한 스케치 영상 하나로 남아있다.
(그나마 이 흔적도 상철이형의 센스가 없었다면 그저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솔직히 그리 훌륭하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자랑할만한 거리는 되지 않지만 술안주로는 제격이다.
지지부진한 일상에 의미가 없을때면 가끔 야릇한 미소를 선사해준다.

이 행사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그때가 정말이지....

그리워 미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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